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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11/16 허지수 기자

[스타트업 패러독스]1.스타트업과 대기업-03.경영기술 패러독스

(좌: 박항준 비즈니스모델 전문가/우: 박현정 액셀러레이터)

슘페터는 자신이 주장한 ‘신결합이론’의 목적이 경제발전과 경기순환을 위해서였으며 기업 간 경쟁을 설명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슘페터의 의도와는 달리 이를 적용하는 이론가들이나 기업들은 이 개념을 모두 ‘경쟁기술’에 사용하여 왔다.

‘포지셔닝’은 경쟁사보다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술이다. 세계 최초, 국내 1위, 아시아 최고 등의 비교경쟁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반면 비경쟁시장을 기본 개념으로 BM을 설계하게 되면 경쟁사가 협력사가 된다. 굳이 타사와 비교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치 냉장고를 새로이 탄생시키는데 ‘세계 최초’라는 포지셔닝은 고객에게 와 닿는 의미가 적다. 그런 말은 경쟁관계에서나 쓰는 말이다. ‘Only one’인데 굳이 서열을 매길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경쟁그룹 간 경쟁노력은 당연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는 경쟁자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반화되어 사냥기술의 본류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문제다. 일부 학자들의 허세와 자만으로 경쟁기술(이기는 기술)을 사냥기술(생존 기술, 잡는 기술)보다 먼저 가르치고, 그것이 최우선이라고 외친다면 후발 사냥꾼들은 모두 몰살당하고 말게 될 것이다. 경영학자들이야 몇 년 후 자신들의 논문을 수정하면서 보완했다고 외치면 그만일지는 몰라도 이미 ‘밤송이’를 손에 쥔 채 청운의 품을 꿈꾸며 사냥터에서 장렬히 전사한 초보사냥꾼들의 넋은 누가 달래야 한단 말인가?

연구자들의 실제 연구내용은 언론과 책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하지만, 연구결과가 방송이나 여론에 의해 다소 과장되어 포장되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코끼리를 ‘밤송이’ 하나만 있으면 잡을 수 있다”라는 자극적인 카피가 만들어 지고 만다. ‘경쟁기술’이 ‘사냥기술’로 포장되어 초보 사냥꾼들인 스타트업들의 눈을 가리게 된 것이다.

초보 사냥꾼들은 ‘밤송이’에 대한 믿음으로 사냥터에 나선다. 책에서 그렇게 읽었고,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혁신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신들의 기술이 곧 혁신이며, 앞으로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믿고 창업을 한다. 그것을 말리는 일부 전문가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본인들의 경험만을 믿고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진부한 사람들이 된다. 차라리 진부한 이들이 있는 것은 행운이다. MOT나 MBA에서 배운 우수한 ‘밤송이 기술’을 뽐내며, 스타트업을 사지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끔 밤송이로 코끼리를 잡은 친구들이 이슈가 된다. 이런 스타트업들은 화려한 성공스토리로 ‘밤송이’에 열광하는 학계와 일부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되는데 결국 스스로가 ‘경쟁기술 패러독스’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시장진입기술을 사용해서 경쟁기술 패러독스에 빠져나와야 한다. 만약 진입하려는 시장이 경쟁을 해야 하는 시장이라면 1차전은 싸워보지도 않고 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미 누군가가 성을 차지하고 있으니 공성전략을 써야 하는데 공성에 있어 공격자는 2배의 전투력이 필요하다. 손자병법의 말이다.

따라서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경쟁기술’이 아닌 새로운 룰이 적용되는 새로운 시장에 ‘진입기술’이 필요하다.

모 방송에서 성격 급한 시어머니가 베트남의 사돈집에 방문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몸이 아픈 신부의 언니와 소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수줍음 많은 사돈을 보고 시어머니는 생존을 위한 방법을 가르쳐주려 한다. 며느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 돈 1500원어치 옥수수를 사서 한국식으로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한 솥 쪄내서 동네 골목에서 팔기 시작한다. 며느리는 창피하기도 하고, 낮잠 자는 시간에 누가 다니겠냐며 슬며시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현지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만 멋 적게 의자에 앉아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안 되는 것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지나가는 몇 안 되는 이들을 붙잡고 시식용 옥수수를 한국말로 나눠주기 시작한다. 몇 시간 후 며느리가 다시 돌아왔을 때 솥 안에 옥수수는 모두 팔리고 시어머니는 사돈의 손에 5000원을 쥐어주었다.

마음속으로 조마조마하게 보면서 다 팔리고 난 후 생각했다. “다행이다. 한국식 옥수수가 베트남에서 먹혀서”, “다행이다. 옥수수가 3배 가격으로도 다 팔려서”, “다행이다. 옥수수판매점이 근처에 없어서”. 이기는 경쟁기술이 머릿속에 박힌 사람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이다. 베트남인들의 입맛도, 물가사정도, 시장상황도 모르면서 어떻게 옥수수를 길거리에서 팔 수 있을까? 이 도전은 대기업경영학에 있을 수 없는 기적이다.

반면 잡는 기술 즉, 생존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오로지 파는 것에만 집중한다. 시어머니가 그랬다. 팔리지 않으면 큰소리친 사돈에게 망신이라는 절박함과 찐옥수수 맛을 내는데 있어서는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만이 있었기에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든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든 주인공에게는 염두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언어의 장벽도 방해물이 되지 못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회장이 살아 돌아온 느낌! 스타트업은 이 절실함과 생존목표로 무장된 이 느낌이 사냥터에서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이며 가장 큰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