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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04/05 허지수 기자

[스타트업 패러독스]2.생존기술과 경쟁기술-04.데스밸리의 역설

(좌: 박항준 비즈니스모델 전문가/우: 박현정 액셀러레이터)

사람들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창업 후 얼마지 않아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만나게 된다고 야단법석들이다. 원래 1년에서 3년 정도 된 스타트업이 고비를 맞는다고 시점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말인데 최근에는 열심히 만들어 놓고 시장에 나가기 바로 직전에 자금이 똑 떨어진 상태의 스타트업의 위치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모두 정부 탓이란다. 사회구조가 안 되어 있어서 그렇단다.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이 불완전해서 기업들이 힘을 못 쓴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데스밸리를 이기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얘기는 솔직히 모두 사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다. 정치적 구호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데스밸리를 만나는 것은 사회구조 탓도 아니고, 정부의 직무태만도 아니다. 단언컨대 스타트업의 성장과정에 있어 ‘데스밸리’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다. 스타트업은 모두가 위험하고, 언제나 위기인데 특별히 데스밸리란 지점은 없다. 매일 매일이 고비고, 매순간 순간의 결정이 ‘생’과’사’를 나누기 때문이다.

개발을 다 해놓고 돈 떨어져서 ‘데스밸리’가 왔다는 게 무슨 벼슬도 아닌데 정부를 탓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고 핑계다. 사냥터에 준비 없이 남 얘기 듣고만 왔다가 패잔병으로 되돌아가야하니 쪽팔리니까 만든 말 아닐까? 아니면 밤송이만 가져가면 코끼리 잡을 수 있다고 가르친 사냥경험 없던 교수님들이나 성공만 해봤던 추억의 멘토들이 자기 제자들이 자신들의 말 때문에 개죽음 당하는 꼴이 안타까워 그나마 도와주기 위해 궁색하게 만든 일종의 ‘사회적 보상’인가?

하긴 죽는 시기가 비슷하니 “창업 1~2년 내에 통계적으로 이런 시점이 있나 보다.”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단언컨대 ‘데스밸리’는 연간 사업계획의 병폐일 뿐이다. 모든 사업계획을 연간 기준으로 세우다보니 모든 비용지출도 연간 기준으로 작성되게 된다. 더군다나 기업을 하다보면 보통 예상비용의 50에서 200%까지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되어 2년간의 캐쉬플로우을 짜고 자금을 투자 받았다고 하면 경쟁력 없는 기업은 1년 반이면 자금이 바닥나고 말게 되어있다.

창업자금 1억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거의 개발이 완료된 기업이 있다. 이제 한 3천만 원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예상보다 빨리 자금이 떨어졌다. 이 기업은 데스밸리를 만난 것이다.

이런 기업이 만약 1억5천으로 시작했다고 하자. 과연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 통장에 2천만 원의 자금이 남아 있을까? 데스밸리여서 빠져 죽는 게 아니라 죽다보니 데스밸리 즉, 스타트업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에 머물게 된 것이다.

묻고 싶다.

“향기 없는 꽃에 벌은 없다!

잘 팔린 것 같은 물건에 왜 투자자들이 투자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거의 다 만들어 놓은 물건에 말이다.

‘데스밸리’를 만난기업들에게 지원하면 삼성이 될 수 있을까? 특별한 경영적 변수, 갑작스런 예측이 불가능한 커다란 위험으로 스타트업이 힘들어질 수는 있어도 ‘데스밸리’라는 함정을 계속 의지한다면 변명의 여지만 줄 수 있다.

‘데스밸리’가 존재한다면 사냥터에 창과 활은 준비 안하고 무작정 ‘밤송이’들고 나간 창업자들 탓이고, 그들을 그렇게 몰아간 사회의 책임이긴 하다. “코끼리 발가락만 공격하면 코끼리를 쉽게 잡을 수 있다.”라고 가르친 우리들의 탓이기도 하다. 들고 간 ‘밤송이’ 몇 개로 코끼리와 싸우다 목숨을 잃어가는 어린 용사들이 뒤를 돌아보며 사회에 외치는 비참한 절규가 바로 ‘데스밸리‘라는 말이다.

‘데스밸리’를 극복하자는 말은 죽어가고 있는 창업자들에게 지금이나마 사냥터에다 창과 활을 던져주자는 말이다. 사냥터에 긴급하게 써 본적도 없는 창과 활을 던져준다고 코끼리를 잡을 수 있겠는가? 만신창이가 되어 살아 돌아올 수는 있겠지만 준비 안 된 군인에게 무기는 오히려 자신들에게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넘어야할 것은 죽음의 계곡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위험들이다. 앞서 언급한 리비히의 법칙을 기억해보라.

‘데스밸리’란 창업자가 창업 후 만나게 되는 첫 번째 고비가 아니다. ‘경쟁기술’만으로 사냥터에 나갔다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전사한 창업자들의 무덤일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데스밸리라는 말을 남용해서 무지한 창업자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미화시키지 말자. 그리고 스타트업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기업 경영학’을 가르쳐준 죄에 대한 보상심리로 ‘데스밸리’의 구원자로 자처하지 말자. 우리가 할 일은 무덤에 빠진 이를 구원하기 보다는 무덤에 빠지지기 전에 바른 사냥기술 즉, 생존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스타트업 패러독스를 극복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