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과 경제의 타임머신 – 못다한 이야기 (Director’s Cut) #62] 칭기즈 칸의 개방형 플랫폼 ::::: 세상을 바라보는 열린신문 아시아헤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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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12/13 윤승환, 정승원

[전략과 경제의 타임머신 – 못다한 이야기 (Director’s Cut) #62] 칭기즈 칸의 개방형 플랫폼

칭기즈 칸이 태어난(현재 몽골에서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칭기즈 칸의 탄신일은 1162년 11월 14일이며, 그가 몽골을 완전히 통일한 해는 1206년이라고 한다) 12세기의 몽골은 인구가 200만명을 넘지 않는 데다 부족별로 완전히 분열되어 있었던 약소국가였다. 그런데도 칭기즈 칸은 그 작은 몽골 부족을 기반으로 주변국 2억여 명의 인구를 다스리는 강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그가 이렇게 강력한 제국의 지배자로 떠오른 배경에는 분배 시스템을 개방형으로 개혁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몽골 초원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약탈이었다. 다른 부족과 싸워 양이나 말 같은 가축을 빼앗고 노예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제활동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몽골에서는 전투에 참여한 소수의 귀족들만 약탈품을 차지할 권리가 있었고, 약탈품은 먼저 차지한 사람의 소유가 됐다.
전쟁 후의 이러한 약탈의 결과에 따라 귀족들의 부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몽골족은 일단 전쟁이 유리하게 흘러가면 적을 섬멸하기보다 약탈에 더 열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전쟁에 패한 부족은 물자를 그대로 두고 달아나면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고, 나중에 설욕을 위한 복수에 나설 수 있었다. 이처럼 적의 섬멸보다 약탈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분배 구조는 약탈과 복수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만들었고, 초원의 통일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칭기즈 칸은 이 같은 초원 부족들의 문제점을 꿰뚫어보고 분배의 규칙을 완전히 바꿨다.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할 때까지 개인적인 약탈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자신의 가족이나 아무리 높은 귀족이라도 큰 벌을 내렸다. 그리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뒤, 약탈한 물건들을 한곳에 모아 각자의 역할과 전공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했다. 게다가 전쟁에 참여한 소수의 귀족만 약탈에 참여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후방 지원이나 병참에 나선 전사들까지 모두 골고루 전리품을 나누어 받았고, 심지어 이전의 전쟁에서 숨진 전사의 유족들에게까지 전리품이 배분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간단한 규칙 하나가 칭기즈 칸의 군대를 초원의 최고 강자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공을 세운 대로 전리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전사들은 약탈보다 명령에 따라 적을 섬멸하는 데 주력하게 됐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충분히 전리품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그의 군대를 더욱 용맹하게 만들었고, 전사한 군인의 유족에게도 전리품을 나눠 준다는 확신 덕분에 칭기즈 칸의 군대는 더더욱 목숨을 아끼지 않고 승리를 위해 싸웠다. 또한, 후방 지원을 한 사람들에게도 일정 기준에 따라 전리품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칭기즈 칸의 군대는 강력한 후방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전사를 잃은 소외된 계층까지 공정한 분배를 통해 전사를 다시 배출할 기회를 갖게 되자, 초원의 어떤 부족보다도 넓은 인재 풀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 같은 공정한 분배 시스템은 몽골 제국의 성장을 촉진하고 더욱 풍요로운 분배를 가져오는 선순환을 일으켜, 몽골이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칭기즈 칸은 한때 적으로 맞섰던 노예를 너그러이 포용하여 칭기즈 칸 군단의 최고 장수 중 하나로 활용한 일화도 있다. 제베는 칭기즈 칸 군대와 싸웠던 타이치오트족의 노예였다. 천한 신분이었던 그는 치열한 전투 중에 화살로 칭기즈 칸의 목을 맞췄다. 칭기즈 칸은 이때 거의 죽을 뻔 했지만 부하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다. 칭기즈 칸 군대는 타이치오트족을 무찌른 후 포로들을 다그쳐 누가 칭기즈 칸을 활로 쏜 범인인지 추적했다. 이때 제베는 당당하게 스스로 나섰다. “제가 쏘았습니다.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를 죽이면 제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한 움큼의 흙만 적실 것입니다. 반대로 저를 용사로 받아 주신다면, 제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전 세계의 대지를 적실 것입니다.”
칭기즈 칸은 감탄하며 제베에게 말했다. “적이라도 패배하고 나면 상대에게 해를 끼친 일은 숨기기 마련인데 그걸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너는 진짜 용사이다. 이제부터 너는 내 동지이다.” 그리고 칭기즈 칸은 몽골어로 ‘화살촉’ 이라는 뜻인 ‘제베’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전투마다 제베를 최선봉에 내세웠다. 이후 제베는 출전하는 전투마다 엄청난 공로를 세워 칭기즈 칸의 은혜에 보답하게 된다.

이외에도 칭기즈 칸은 피 정복자인 거란인 야율야해에게 공로를 인정하여 만호(후에 요왕으로 임명)를 부여했고, 거란인 야율초재를 등용하여 행정을 담당하도록 했고, 페르시아인 알라와디(阿刺而思)에게는 재정업무를 맡겼다. 그가 빠른 시간 내 광활한 점령지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의 유능한 인재는 즉시 발탁하여 활용할 줄 아는 혜안(慧眼) 과 너그러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이 칭기즈 칸의 위대한 업적 이면에는 개방형 플랫폼의 철학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었으며, 칭기즈 칸이 제시한 개방형 플랫폼의 효율성은 약 8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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