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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12/27 윤승환, 정승원

[전략과 경제의 타임머신 – 못다한 이야기 (Director’s Cut) #64] 일본 전국시대의 전략과 경제 : 계량화된 신상필벌 문화

한편,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가 연이어 활약하던 1500년대의 일본은 전쟁 전략 수립 시 상호 경제력을 고려하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이때부터 이미 전쟁 결과에 대한 신상필벌이 계량화, 체계화 되어 있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서로 영토를 뺏고 뺏기는 전국시대의 치열한 전쟁을 통해 농업 생산성을 토대로 개별 영주의 최대 병력 동원 인원을 계산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통상적으로 연 수입 쌀 1만석 이상이 가능한 영토를 보유한 영주를 다이묘(大名)라고 일컬으며, 이 정도가 자신의 저택이나 성을 독자적으로 쌓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최저 경제력으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쌀 1만석 당 동원 가능한 병력은 약 250~300 명이 적절한 수준으로 간주되었고 이것을 기준으로 전쟁 시 서로의 동원 병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사용하였다. 1백만석의 대영주 (* 1백만석 이상은 다이다이묘 - 大大名 - 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다) 정도는 돼야 25,000명 ~ 30,000명의 대부대를 동원하는 것이 가능하였고, 이 정도의 병력이 있어야 천황을 끼고 일본 전역을 호령할 수 있는 정이대장군 (* 征夷大將軍, 세이이다이쇼군, 줄여서 쇼군) 자리를 노릴 수준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쟁의 신상필벌이나 출세의 척도 역시 철저한 계량화 하에 행해졌다. 웬만한 영주들은 주판을 들고 직접 자신과 상대편 적의 농민 수에 따른 조세 수입과 동원 병력을 비교 계산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고, 부득이하게 병력이 많은 적과 대적해야 할 때는 동맹 외교를 통해 동원 병력의 수를 어떻게든 동등하게 맞춰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철저한 계량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전쟁에서 이기거나 패했을 경우 영주와 부하들의 노고와 실수에 대한 보상과 문책 역시 계량화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이었다. 작전 성공에 따라 관할 농지를 새로 부여 받거나 아니면 작전 실패에 따라 박탈당하는 신상필벌이 녹봉 몇 만석~몇 십 만석이 들어오는 지역의 통치를 새로 맡거나 아니면 강제로 뺏기거나 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던 것이다. 가문 내 전체 주요 인물들이 모인 공로장 수여식에서 “이번의 혁혁한 공로로 OO 지역 XX 만석의 영지를 내리노라” 하고 발표하는 식이었다. 가문 내에서의 출세 경쟁 역시 이번에 누구는 어디의 몇만 석의 영지를 새로 받았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서로 비교하며 경쟁하는 식이었다.

관점을 잠깐 한국 입장에서 바꾸어보자면, 이렇게 철저히 계량화된 신상필벌의 문화가 임진왜란 시에는 전혀 적용되지 못한 것이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 지휘관들 (이하 왜장이라고 표현하겠다) 이 임진왜란 초기의 불 같은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 주요 원인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당시 조선으로 쳐들어온 왜장들의 생각으로는, 임금이 수도를 비우고 도망가게 되면 당연히 그 밑의 힘 있는 백성들은 새로운 점령자에게 잘 보이고 새로이 영토를 나눠 받기 위해 앞다투어 항복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단순한 항복을 넘어 기존에 모시던 임금을 공격하여 그 목을 새로운 점령자 앞에 바치는 것이 자신들도 살고 새로운 출세의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 백성들은 자신들의 임금을 공격하기는커녕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조총에 대항하여 맨손으로 게릴라전을 벌이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왜군 침략자들에게 대항하였던 것이다. 이에 당황한 왜장들은 이를 말살하기 위해 더더욱 가혹한 점령지 정책을 벌였고, 이에 분노한 조선 백성들은 더욱 가열차게 전국적인 항쟁에 나서는 등, 왜군 입장에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악순환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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