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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03/01 윤승환, 정승원

[전략과 경제의 타임머신 – 못다한 이야기 (Director’s Cut) #73] 로마의 전략과 경제 ① 개방형 플랫폼으로 성공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르투리아인보다 뒤졌으며,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에 한참 뒤졌던 로마인. 그들이 타 민족을 정복하고 천년 이상 영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의 역사를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그 출발점으로 삼은 첫 질문이었다.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계속 전진하여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훨씬 먼저 유럽 최초의 문명을 열고 지중해 일대에 여러 식민도시를 거느렸던 그리스마저 로마에 의해 무너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은 ‘헬레네스’라고 칭하고 다른 종족들을 ‘바르바로이’라고 부르며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해상무역으로 번창한 아테네조차도 부모가 아테네 시민일 경우에만 시민권을 주는 폐쇄성을 유지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하여 서양 학문의 큰 기둥으로 선 아리스토텔레스마저 17세의 청소년기부터 시작하여 20년간이나 당시 아테네 최고의 철학자 플라톤의 수제자로 있으면서 뛰어난 연구 결과를 끊임없이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 태생이라는 이유로 아테네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지내야 했다.

반면 로마는 국가 건설 초기 (B.C. 800년경)부터 피정복 민족을 자신들의 사회에 받아들이고 시민권을 주는 데 적극적이었다. 플루타르코스가 그의 저서 ‘영웅전’에서 “패자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이 방식만큼 로마의 강대화에 이바지한 것은 없다”고 기록한 것이 로마의 성공 요인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한 로마는 주변 부족과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합쳐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른 부족의 자유민에게도 로마인과 똑같은 완전한 시민권을 주었고 지도자에게는 원로원 의석도 제공했다. 인구 증가와 병력 증강을 위한 방책이었지만 이 개방적인 방식이 대제국의 성립을 가능하게 했다.

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긴 것처럼 로마는 제국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했다. 전체 길이가 8만km, 지선을 합치면 15만km에 이르는 길에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어가며 연결했다. 4m 이상의 마차길 양쪽에 3m 정도의 인도를 배치한 이 길은 현대의 어떤 개발도상국의 고속도로보다 튼튼한 지반공사로 유명하며, 2000년 뒤 현대 이탈리아는 로마 시대에 만든 도로에 아스팔트만 깔아서 국도로 이용하고 있다. 로마는 이 도로를 통해 도시·농촌간, 민족간 교류를 확대하여 제국을 한 경제권으로 통합했으며 사회 갈등을 해소와 치안 유지에도 요긴하게 활용하였다.

이러한 로마의 세계 정복에는 모든 구성원을 정복 전쟁에 참여시키는 사회 시스템적인 전략과 경제가 뒷받침되고 있었다. 당시 로마 시민은 각자 계급 (크게 3가지 계급으로 나뉘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원로원 귀족 계급, 중상류층 급 재산을 보유한 기사 계급, 하층 민중 등으로 나뉘어진다)이 부여된 자유민으로서, 재산이 많은 시민은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큰 반면, 전쟁에 나갈 때 자신의 비용으로 말과 전투장비를 마련해야 하는 의무도 컸다. 또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국가에 봉사하는 의무이기도 했지만, 최고의 재테크이기도 하였다.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로부터 시작하여 지속적인 영토 정복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가장 이윤이 남는 투자 활동이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저서 ‘전술론 (Dell'arte Della Guerra)’ 에 보면 로마 군대 내의 전리품 분배 방식과 저축 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로마 군은 전리품의 관리에 대해서 군 내부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했다. 그들은 모든 전리품을 곧바로 국가에 보내지 않았다. 모든 로마 군단에는 그 군단 소속의 자체 감찰관이 있었는데, 그는 군단 내 모든 배상금과 전리품 관리 문제를 다뤘다.

로마 군단은 전쟁에서 승리한 경우 모든 전리품을 군단의 중앙에 모으고 각자의 순위에 따라 상위 계급부터 분배했다. 또 로마 군대는 승리를 거두어도 적을 추격하여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아군의 전투대형이 혼란으로 흐트러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약탈한 전리품을 개인의 소유로 했다면 군단의 규율이 무너져 위험한 일이 자주 발생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마 군대는 전쟁의 승리로 얻은 전리품은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감찰관의 판결 하에 공정하게 나누고,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상당 부분은 국고에 귀속시켰던 것이다.
또 로마 군단에는 병사들을 자발적으로 분발시키는 저축 제도도 존재하였다. 어느 병사든 급료를 받았을 때는 그 3분의 1을 소속 부대기를 지키는 기수 주변에 맡겨두어야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러한 제도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저축을 장려하고 사회적 안정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야전에 나서는 병사들은 대부분 야무지지 못하고 돈이 생기면 대부분 금세 낭비하고 써버리기 마련이다. 둘째, 자신들의 월급의 상당 부분이 부대기와 함께 존재하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부대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게 되었다. 마치 현대 벤처기업의 스톡옵션 부여와 같은 뛰어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로마 군대는 의무 복무 기간을 20년으로 정해, 17세~20세 경에 청년으로 입대한 사람도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면 제대하여 제2의 인생을 개척하게 하였고, 그런 이유로 인해 이 당시의 로마 군대는 개인의 능력과 희망에 맞게 각종 전문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일종의 직장이자 직업 학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로마는 정복 전쟁을 거듭함에 따라 새로 영토에 편입된 속주민을 되도록 공평하게 취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피지배 민족의 저항감을 최소화 하였으며, 구체적으로는 로마 시민이 아닌 속주민이라도 로마 군대에 보조병으로 입대하여 만기 제대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세습적인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여 로마법의 보호를 받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로마의 통치 전략은 기본적으로 ‘분할하여 통치하라 (Divide and Rule)’ 이며, 이는 현대 미국의 세계 전략과도 일치한다. 로마는 직접 통치할 수 있는 곳은 직접 통치하고, 전쟁에서 이긴 후 동일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할 정도로 언어, 종교, 생활양식이 같은 지역에는 로마와 동일한 혜택을 주었고, 갈리아와 같이 다소 생활 양식이 다른 지역을 정복하면 그 지역의 상류층과 군대 자원 입대자에게만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 심지어 유대 지역과 같이 절대 로마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지역에는 군사권을 제외하고 경제, 사법권을 포함하여 거의 완벽한 수준의 자치권까지 부여하였다. 이로 인해 로마에 정복된 각 지역들은 자연스럽게 로마 제국의 시스템의 일부로 동화되고, 나중에는 로마 태생의 사람들보다 더 로마 제국을 위해 헌신하고 심지어 식민지 출신이 로마 황제에 오르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마치 아프리카 케냐의 한 가난한 공무원이 미국 유학시에 낳은 아들인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오른 것과도 비슷하다고 하겠다. 미국 대통령의 상징인 독수리가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표상인 독수리와 같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미국의 국가 전략이 로마 제국의 그것을 표방하고 있다는 상징인 것이다.

[본 기사나 책에 대한 질문 및 의견은 bookdoo@gmail.com 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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